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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센고쿠 시대의 농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시겠죠? 발행일 : 2025-05-04

전국시대 농민들의 삶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졌으며, 그들은 단순한 피지배 계층을 넘어 때로는 무장하여 영주에 맞서고, 자치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갔다. 잇키(一揆)라 불리는 농민 봉기부터 전쟁터에서의 잡역, 그리고 새로운 농업 기술의 도입까지, 센고쿠 시대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했다.

 

🌾 농민들의 이중적 신분 - 평화로운 농부에서 전시의 병사로

센고쿠 시대의 농민들은 평상시에는 논밭을 갈다가도 전쟁이 발발하면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향해야 했다. 많은 다이묘들이 상비군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에, 농민들을 임시로 징집하여 아시가루(徒歩)라 불리는 보병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주로 창이나 활로 무장했으며, 전투가 끝나면 다시 농사일로 돌아가는 반농반군의 삶을 살았다.

흥미롭게도 일부 농민들은 전쟁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표적인 사례로, 농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력으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이런 극적인 성공 사례는 드물었지만, 전공을 세운 농민들이 사무라이 신분을 얻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시기 농민의 역할 무장 상태 보상 체계
농번기 농업 생산 농기구 수확물 일부
전시 보병(아시가루) 창, 활, 화승총 전리품 분배
축성 작업 노동력 제공 도구류 식량 배급
보급 지원 군수품 운반 비무장 노역 면제
 

⚔️ 잇키(一揆) - 농민들이 일으킨 저항의 물결

센고쿠 시대 농민들은 부당한 세금이나 횡포에 맞서 집단적으로 봉기하는 일이 잦았다. 이러한 농민 봉기를 잇키라고 불렀는데, 때로는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반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특히 카가 지방에서는 농민과 불교 신자들이 연합한 잇코잇키(一向一揆)가 약 100년간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농민들의 봉기는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나름의 조직과 규율을 갖춘 저항 운동이었다. 그들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요구사항을 명확히 제시했으며, 때로는 영주와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야마시로노쿠니 잇키는 농민들이 자치적으로 지역을 통치한 대표적 사례로, 비록 8년 만에 진압되었지만 민중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 주요 농민 봉기의 특징

  • 종교적 신념과 결합된 저항 운동
  • 마을 단위의 자치 조직 형성
  • 영주와의 협상을 통한 세금 감면 요구
  • 무장 봉기와 평화적 시위의 병행
  • 지역 간 연대를 통한 세력 확장
 

🌱 전란 속 농업 기술의 발전 - 생존을 위한 혁신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농업 기술은 오히려 발전했다. 각 다이묘들이 부국강병을 위해 농업 생산력 증대에 힘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이모작이 보편화되었고, 새로운 품종의 작물들이 도입되었다. 특히 면화와 담배 같은 상품작물 재배가 시작되면서 농민들의 현금 수입이 증가하기도 했다.

관개 시설의 확충도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전국 각지에서 저수지와 용수로가 건설되었고, 이는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되었다. 또한 검지(토지 측량)가 실시되면서 토지 소유권이 명확해졌는데, 이는 농민들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난 반면, 토지에 대한 권리도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농기구의 개량도 이루어졌는데, 특히 철제 농기구의 보급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전시에는 이런 철제 도구들이 무기로 징발되는 일도 있어서, 농민들은 농기구를 숨기는 데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민들은 나무와 대나무를 이용한 대체 도구를 만들어내는 등 끊임없이 적응해나갔다.

 

🏘️ 마을 공동체의 결속 - 상호부조로 이겨낸 난세

센고쿠 시대 농민들은 마을 단위의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했다. '무라(村)'라 불리는 이 마을 공동체는 단순한 거주 집단을 넘어 하나의 자치 조직으로 기능했다. 마을의 중요한 일은 '촌민회의'에서 결정되었고, 연장자나 부농이 대표를 맡아 영주와의 교섭을 담당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유이(結)'라는 상호부조 시스템이다. 농번기에는 서로의 농사일을 돕고, 집을 지을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전쟁으로 가장을 잃은 가정이나 흉작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가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들의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마을 공동체는 종교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마을 신사나 절을 중심으로 축제와 의례가 열렸고, 이는 농민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했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이러한 종교 행사는 계속되었는데, 오다 노부나가 같은 일부 다이묘들이 불교 세력을 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신앙심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이처럼 센고쿠 시대의 농민들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서로 의지하며,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순응하면서 자신들만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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