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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의 지위 변화 고대 여신에서 현대 직장인까지

아시겠죠? 발행일 : 2025-05-11

일본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역사적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마테라스 여신이 신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여성 통치자들이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무사 계급이 득세한 중세 시대부터 여성의 권리는 점차 축소되었다. 봉건 시대를 거치며 '이에'(家) 제도 아래 종속적 위치에 놓였던 여성들은 메이지 시대의 '양처현모'(良妻賢母) 이데올로기를 거쳐, 전후 민주화와 여성해방운동을 통해 법적·사회적 권리를 확보해나갔다.

현대 일본에서 여성들은 전례 없는 교육 기회와 법적 평등을 누리게 되었지만, 직장 내 유리천장과 가사·육아 부담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 여성 지위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그들이 직면한 도전과 가능성을 탐색한다.

 

👑 고대의 여신들과 여왕들 - 초기 일본의 여성 권력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신화의 중심에 배치했다. 천황가의 시조로 숭배되는 이 여신의 존재는 고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가졌던 종교적, 정치적 중요성을 암시한다. 고고학적 증거와 중국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야요이 시대(기원전 300년~서기 300년경)와 고분 시대(300~710년) 초기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샤먼으로서 종교적 권위를 지니거나 정치적 지도자로 활약했다. 중국 사서 『위지』(魏志) 왜인전에는 3세기 경 히미코(卑弥呼)라는 여왕이 야마타이국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실제로 5세기에는 여성 천황인 스이코(推古天皇)를 비롯해 여러 여성 통치자가 존재했다.

시대 구분 여성의 사회적 지위 주요 특징 대표적 인물/제도
고대(~8세기) 높은 종교적·정치적 권위 여성 통치자, 여신 숭배, 상속권 히미코, 스이코 천황, 아마테라스
헤이안(9~12세기) 귀족 여성의 문화적 활약 문학 주도, 정략결혼, 재산권 보유 무라사키 시키부, 세이 쇼나곤
무사시대(12~19세기) 가부장제 아래 종속 무가법도, 이혼권 제한, 교육 제한 가훈(家訓), 이에(家) 제도
메이지~전전(1868-1945) 국가 이데올로기 속 역할 양처현모 이념, 제한된 공민권 민법상 무능력자, 부인회 활동
전후현재(1945) 법적 평등, 실질적 차별 헌법상 평등, 노동참여 증가, 유리천장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우먼노믹스

헤이안 시대(794-1185)는 일본 여성 역사의 독특한 장을 연다. 이 시기 궁중 귀족 사회에서 여성들은 상당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다. 결혼 후에도 친정에 거주하는 '별거혼'(別居婚) 관행이 보편적이었고, 여성들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다. 특히 문학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와 같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이자 수필로 평가받는다. '온나데'(女手)라 불리는 히라가나 문자의 발전으로 여성들의 문해율이 높아진 것도 이러한 문학적 성취의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여성의 높은 지위는 주로 최상층 귀족 계급에 한정된 것이었다. 또한 정치권력은 점차 남성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외척 세력인 후지와라 가문이 천황가의 딸들과 정략결혼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여성은 정치적 연결고리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 이르면 여성의 재산권과 상속권도 점차 제한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일본 역사상 여성의 문화적 영향력이 가장 컸던 시대로 기록되며, 후대 여성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 그림자 속의 삶 - 무사사회와 봉건제 아래 여성들

 

가마쿠라 시대(1185-1333)부터 에도 시대(1603-1868)에 이르는 무사 지배 시기는 일본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하락한 시기다. 무사 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무력과 가문의 계승이 중시되면서, 여성의 역할은 주로 가정 내로 제한되었다. 특히 에도 시대에 발전한 성리학적 가부장제는 '이에'(家) 제도를 통해 가족 내 엄격한 위계질서를 강조했다. 이 시대 여성에게 요구된 덕목은 '삼종지도'(三從之道)로,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에게 순종하라는 유교적 규범이었다. 카이바라 에키켄의 『온나다이가쿠』(女大学)와 같은 교훈서는 여성의 행동 규범을 상세히 규정하며 복종과 인내를 미덕으로 칭송했다.

이 시기 여성의 사회적 제약은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났다:

▲ 법적 권리 축소 - 이혼 청구권 상실, 재산권 제한, 상속에서 배제
▲ 교육 기회 차별 - 여성 교육은 가사와 예절에 초점, 학문적 교육 제한
▲ 신체적 통제 - 치아 검게 물들이기(오하구로), 눈썹 면도(히키마유) 등 외모 통제
▲ 공간적 제약 - '오쿠'(奥)라 불리는 가정 내 공간에 국한된 생활
▲ 혼인 관행 변화 - 처가살이에서 시가살이로, 일부다처제 용인
▲ 정치적 배제 - 공적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 간접적 영향력만 행사
▲ 계급별 차이 - 농촌 여성은 노동력으로 가치 인정, 무사 계급 여성은 더 엄격한 통제

그러나 이런 제약 속에서도 여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사 계급에서는 '오오쿠'(大奥)라 불리는 쇼군 가문의 여성 거주지가 독자적인 권력 구조를 형성했고, 상인 계급에서는 '오이에'(御家)의 경영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농촌에서는 여성들이 생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직물 생산과 같은 분야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에도 시대 중후반에는 도시의 발달과 함께 상업적 오락 문화가 발전하면서 게이샤와 같은 여성 예능인들이 새로운 직업적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무사시대 여성들의 생활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규범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괴리도 고려해야 한다. 교훈서와 법령에 나타난 엄격한 규범이 모든 계층에 균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으며, 시대와 지역, 계층에 따라 여성의 실제 경험은 다양했다. 특히 농촌 여성들은 생산 활동에 필수적인 노동력으로서 가족 내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했고, 도시 상인 가문의 여성들은 가업에 참여하며 경제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문학 작품과 회화 자료를 통해 볼 때, 공식적인 규범과 달리 남녀 간의 감정적 유대나 여성의 자기표현이 완전히 억압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현실은 단순한 '억압과 순종'의 프레임으로 봉건시대 일본 여성의 삶을 환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 메이지 시대부터 전후 민주화까지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여성의 지위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서구식 교육의 도입으로 여성의 교육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 아래 '양처현모'(良妻賢母) 개념이 강조되었다. 이는 여성이 국가에 충성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어머니이자 근대적 가정을 관리하는 아내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898년 제정된 메이지 민법은 호주제도를 법제화하여 여성을 '무능력자'(無能力者)로 규정했고, 결혼, 이혼, 재산권, 친권 등에서 남성에 비해 차별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정치적으로도 여성은 1890년 제정된 집회 및 결사법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었고, 1925년 보통선거법 도입 시에도 남성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A대 초기에 걸쳐 여성들의 자각과 권리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여성교육의 확대는 의식 변화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871년 문부성 설립과 함께 여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1899년에는 여자고등학교령이 공포되어 여성 중등교육이 제도화되었다. 이 시기 등장한 선구적 여성들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츠다 우메코는 여성 고등교육의 선구자로 츠다 주쿠(현 츠다 대학)를 설립했고, 히라쓰카 라이초는 1911년 일본 최초의 여성 문예지 『세이토』(青鞜)를 창간하여 여성 해방 사상을 전파했다. 또한 이치카와 후사에와 같은 활동가들은 '부인참정권운동'을 전개하며 정치적 권리를 요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여성 지위에 관한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미국 점령 당국의 주도로 1947년 시행된 일본국 헌법은 제14조에서 법 아래 평등을, 제24조에서 가족생활에 관한 남녀평등을 명시했다. 같은 해 개정된 민법은 호주제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이혼, 상속, 친권 등에서 여성의 권리를 확대했다. 또한 1945년 12월에는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어, 1946년 4월 총선에서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고, 39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남녀 공학이 확대되고 여성의 대학 진학이 급증했다. 고도 경제성장기(1955-1973)에는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가 확대되었지만, 주로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결혼 전 '일시적' 직업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 유리천장과 저출산 사회 - 현대 일본 여성의 도전과 과제

 

1970년대 이후 현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법적 평등과 실질적 차별이라는 이중적 현실 속에 놓여있다. 1985년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제정과 1999년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 시행 등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직장 내 성차별과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취업률을 보면 여성의 사회진출은 크게 증가했지만, 관리직 비율은 현저히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높다. 특히 일본 여성의 경력 곡선이 'M자형'을 그리는 것은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직장을 떠나는 여성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2013년 아베 신조 내각에서 '우먼노믹스'(여성경제학)를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우며 여성 활용을 강조했으나, 보육 시설 부족, 장시간 노동 문화, 가사 분담의 불균형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 문제는 현대 일본 사회의 핵심 과제다. 2018년 기준 일본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7시간 34분으로, 남성의 1시간 23분에 비해 5배 이상 많다. 이러한 '제2의 근무교대'(second shift) 부담은 여성들이 경력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엄격한 기업 문화와 '노모하라'(育児ハラスメント, 육아 괴롭힘)와 같은 직장 내 차별도 여성의 경력 단절을 야기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택근무와 학교 폐쇄로 인한 돌봄 부담이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었고, 여성 비율이 높은 비정규직의 일자리 감소는 성별 경제격차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도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 역할과 결혼관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점차 다양성과 워크라이프 밸런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9년 기준 대학 진학률은 여성(57.1%)이 남성(52.9%)보다 높아졌고, 전문직과 국가시험에서도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또한 SNS를 중심으로 한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은 성희롱과 성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 일본 여성의 미래는 이러한 긍정적 변화의 모멘텀이 구조적 장벽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기업문화와 가정 내 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일본 여성의 역사는 신화 속 태양신 아마테라스에서부터 오늘날 다양한 직업 현장에서 활약하는 현대 여성까지,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여정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상당한 권력과 자율성을 누리던 여성들은 무사 시대를 거치며 가부장적 제약 속에 놓였고, 근대화 과정에서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따른 '양처현모'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전후 민주화로 법적 평등을 획득했지만, 실질적인 기회 평등과 사회적 인식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성들은 각 시대의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영역을 확장해왔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은 단순한 젠더 이슈를 넘어,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과 사회 지속가능성의 핵심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고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은 일본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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